제목 : 부탁
늘 푸르기만 하던
내 스케치북에도
노랗고 붉은 물감들이 떨어진다.
늘 무겁기만 하던
내 세상에도
시원한 바람이 분다.
금방 지나갈 순간이지만
가을아,
이 아름다운 길모퉁이에
잠시 머물러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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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선주가 학교 창작시화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시다.
두번 접은 종이 안에 숨어있던 선주의 시.
교내 최우수상을 탔다고 하여 너무 궁금했다.
교내에 어디 걸려있다고 해서
사진을 찍어오라고 찍어오라고 그렇게 얘기했건만
결국 잊어버리고 2학년을 마무리했다.
어떤 내용의 시였는지 궁금하고 그림도 잘그렸을텐데
아쉽지만 일단 잊고 있었다.
3학년이 되어 고등학교 준비를 생각하던 때에
이 시화 작품을 내용이라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고등 준비 자료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선주의 작품이 너무 궁금했고 남겨주고 싶었다.
그래서 담임선생님께 용기를 내어 메세지를 보냈다.
선생님들께 부담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어서
연락을 할때는 웬지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게 한 두 달이 지나고 선주가 두번 접힌 종이를
가방에서 꺼내 보였다.
자신이 써놓고는 너무 오글거린다며 부끄러워하며 보여주지 않았다.
선주 방 정리를 해주다가 책상 위에 놓인 이 종이를 열어보았다.
꼬깃하게 구겨진 종이 안에 숨겨놓은 선주의 시를 읽고
순간 뭉클해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선주가 좋아하는 스케치북과 파랗고 맑은 하늘
그리고 알록달록 물감
선주의 작은 세상에도 무거운게 있었나보다.
무엇이 선주를 무겁게 했을까.
아름다운 순간이 금방 지나갈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
지금 이 순간이 아름답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잠시 머무를 줄도 알고 있었다니
이 순간이 너무 좋고 소중해서 부탁으로 양해를 구하고 있다.
선주 안에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이 담겨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선주만의 우주가 아름답게 커가고 있는 것도 모르고
때로는 불안해하며 온전히 맡기지 못했구나..
나는 이제 선주의 세상을 믿고 응원만 해볼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