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5일 월요일 주말이 지나고 다시 평화로운 평일의 일상을 지내고 있다. 하지만 나는 불현듯 어제의 일이 떠올라 혼자 이불 없는 이불킥을 하고 있다. 어제는 주임신부님의 퇴임 하시는 마지막 미사가 있었다. 보좌신부님의 송별식, 수녀님의 환영식으로 이벤트가 많은 미사였다. 동시에, 큰 교중미사에서의 첫 독서낭독 데뷔(?)한 날이기도 했다. 긴장이 되어 미리 연습도 더 많이 하고, 일요일 아침에 운동도 다녀오는 성실한 자세로 준비하였다. 기분좋게 맑은 아침이였다. 성당에 도착해서 이런저런 준비를 하는 중에 보편지향기도 4번째 기도문을 확인하니 정해져있는 프린트물이 아닌 손으로 꾹꾹 눌러 쓴 기도문이 꽂혀있었다. 떠나는 두 신부님을 위한 기도였다. 음.. 여기서 끊고 이렇게 읽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읽다보니 기도문이 마음이 와 닿는다. 이때부터 뭔가 빌드업이 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미사가 시작되었고, 독서 낭독은 무사히 마쳤다. 강론시간에는 주임신부님과 친분이 있으신 손님 신부님이 해주셨다. 적극적이고 유쾌한 강론이였는데, 그 안에 주임신부님의 첫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나무에 매달려계셨던 아저씨에게 '신부님은 어디계신가요?' 물었더니 '저일걸요?' 하면서 스르륵 나무에서 내려오셨며 신부님의 생애의 한 조각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동안 주임신부님은 강론에 대한 반응 대신 내내 눈을 꼬옥 또는 질끈 감고 계셨다. 그 이야기들을 통해 생각이 확장되어 신부님들의 삶에 대해서도 묵상하게되었다. 신부님도 아이였고 청년일 때가 있으셨겠지. 이 긴 시간을 희생과 봉사로 살아오셨다고 생각하니 경이롭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강론이 끝나고 보편지향기도를 할 시간. 내가 2번과 4번 기도를 할 예정이다. 4번째 신부님들을 위한 기도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감정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안되 안되 ㅠㅠ 신부님들 이름을 꾹꾹 눌러 담아 목소리를 내었는데 울컥하여 감정이 담겨져버렸다. 하아.... 멈칫. 해설자님과 눈이 한번 마주친다. 괜찮다는 눈짓을 해주신다. 하지만 나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1 독서님께 마이크를 전한다. 1 독서님이 나 대신 기도문을 읽다가 점점 뒤로 갈수록 약간의 울컥함이 느껴졌지만 무사히 마무리를 잘 해주셨다. 옆에서 나는 눈물을 훔친다. 그때부터 나는 화끈화끈한 얼굴을 들지 못하고 미사포 안에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하아..... 망.했.다. 이게 뭔일인가 하는 복잡한 마음으로 미사가 끝났다. 다행히 몇 분이 위로를 해주셔서 조금 위안이 된다. 해설자님은 건조하게 읽는것보다 낫지 않냐며 다들 이해할거라고, 낯익은 몇 분이 그렇게 슬펐냐며, 1 독서님도 마지막에 울컥한게 민망하셨는지 나이 드니까 여성화 된다면서(참고로 남자분) 원래 안 우는 사람인데 그랬다며, 짜놓은 각본같았다며 민망함을 덜어보려 애쓰셨다. 사실 덩달아 같이 울컥해주심에 동지가 생긴것 같아 나에게 약간의 안도감을 주었고 죄송하고 고마웠다. 집으로 빨리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아뿔사.. 성당을 나가는 길목에 신부님들과 인사하는 신자분들이 진을 치고 계신다. 하아.... 챙.피.하.다 그렇게 울컥까지 해놓고 신부님들을 그냥 지나치는 것이 뭔가 안맞다는 생각이 들어서(안그래도 되는데;;) 나도 신부님들 앞에 가서 악수를 내밀며 인사를 했다. 지금와서 악수는 하지 말걸 후회가 되고 있다. 내가 뭐 얼마나 활동을 한것도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무슨 악수까지.ㅋㅋㅋㅋㅋ 이 모든 것이 나도 모르게 이루어질 터이니.. 하아... 사람들이 다 나를 쳐다보는것 같은 챙피함이 들었지만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깨우치며 이 모든것은 하늘이 만든 뜻이고 상황일거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집으로 순간이동했다. 신부님의 퇴임 그리고 이른 이동. 주어지는 것에 숙명하고 순종하는 신부님들을 보면서 거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부님들이 떠나는 슬픔보다는 경이로움, 감동, 짠함 그런 감정들이 컸다. 이 긴 역사를 뚫고 사제들이 존재한다는것이 새삼스럽고 소중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암튼, 나 혼자 괜히 챙피하니까 판공성사는 새로운 신부님들 오시면 해야겠다.ㅋㅋㅋㅋㅋ 어디서든 영육간의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문제의 보편지향 4번 기도 " 본당을 떠나시는 000신부님과 000신부님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자비로우신 하느님, 저희에게 귀한 목자로 보내주신 000신부님과 000신부님을 떠나보내며 간절히 기도드리오니, 그들의 걸음걸음마다 축복하시어 주님을 닮은 착한 목자로서 기쁨과 힘을 잃지 않게 하시고 모든 어려움에서 보호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