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일 월요일 베드로 2서의 말씀입니다. 1,2-7 사랑하는 여러분, 2 하느님과 우리 주 예수님을 앎으로써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풍성히 내리기를 빕니다. 3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영광과 능력을 가지고 부르신 분을 알게 해 주심으로써, 당신이 지니신 하느님의 권능으로 우리에게 생명과 신심에 필요한 모든 것을 내려 주셨습니다. 4 그분께서는 그 영광과 능력으로 귀중하고 위대한 약속을 우리에게 내려 주시어, 여러분이 그 약속 덕분에, 욕망으로 이 세상에 빚어진 멸망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5 그러니 여러분은 열성을 다하여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앎을 더하며, 6 앎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신심을, 7 신심에 형제애를, 형제애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귀중하고 위대한 약속 : 용서,성령,부활,영원한생명,친교 믿음 : 하느님을 신뢰함 덕 : 선한 삶을 실천함 앎 : 하느님의 뜻을 깨달아 감 절제 : 자기 욕망를 다스림 인내 : 어려움 속에서도 버팀 신심 : 하느님을 향한 깊은 경외와 사랑 형제애 : 신앙 안에서 서로 아낌 사랑 : 모든 사람에게 향하는 완성된 사랑 라고 지피티의 해설이 있었음. 묵상 : "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앎을 더하며, 앎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신심을, 신심에 형제애를, 형제애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이 구절이 마치 메뉴얼같은 느낌이 들어서 지피티에게 의미를 물어봄. 하느님에게라 가는 방법이나 방향이 때는 구름 속이라 구체적인 메뉴얼이 궁금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아는것과는 또 별개라는 거. --- 6월5일 금요일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말씀입니다. 3,10-17 사랑하는 그대여, 10 그대는 나의 가르침과 처신, 목표와 믿음, 끈기와 사랑과 인내를 따랐으며, 11 내가 안티오키아와 이코니온과 리스트라에서 겪은 박해와 고난을 함께 겪었습니다. 내가 어떠한 박해를 견디어 냈던가! 주님께서는 그 모든 것에서 나를 구해 주셨습니다. 12 사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경건하게 살려는 이들은 모두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 13 그런데 악한 사람들과 협잡꾼들은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면서, 점점 더 사악해질 것입니다. 14 그러나 그대는 그대가 배워서 확실히 믿는 것을 지키십시오. 그대는 누구에게서 배웠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15 또한 어려서부터 성경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얻는 지혜를 그대에게 줄 수 있습니다. 16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으로, 가르치고 꾸짖고 바로잡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에 유익합니다. 17 그리하여 하느님의 사람이 온갖 선행을 할 능력을 갖춘 유능한 사람이 되게 해 줍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배경 : 바오로가 제자인 티모테오에게 남기는 유언 같은 당부 바오로는 죽음이 가까움을 느끼고 있었음. 끈기 **makrothymia** (μακροθυμία) : patience,longsuffering 오랫동안 화내지 않음 -> 사람을 향한 오래 참음 인내 **hypomonē** (ὑπομονή) : perseverance,endurance,steadfastness 사람보다는 어려운 상황 자체를 견디는 힘. 박해와 고난을 견디는 태도 묵상 : "하느님의 사람이 온갖 선생을 할 능력을 갖춘 유능한 사람이 되게 해줍니다" --- 6월 12일 금요일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4,7-16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14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15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1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마태오 복음 11,29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배경 : - 예수님 십자가와 부활: 약 서기 30년 - 바오로의 선교 여행: 40~60년대 - 바오로 순교: 60년대 중후반 - 예루살렘 성전 파괴: 70년 - 요한복음, 요한 1서: 90~100년경 사도행전 : 모험,선교,여행,박해 / 회개하십시오. 세례를 받으십시오 바오로 : 복음을 믿으십시오. 요한1서 : 묵상,사랑,친교,하느님 안에 머무름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요한 : 열두 사도 가운데 한 명,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제자들 중 한명 아버지는 제베대오, 형은 야고보 / 갈릴래아 호수에서 일하던 어부 십자가 아래까지 남아 있던 제자,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를 요한에게 맡김. 유일하게 순교하지 않고 자연사한 사도 오래 살아남아 여러 세대의 교회를 지켜본 사람 젋은 선교사의 열정보다는 긴 세월 신앙을 살아낸 사람의 지혜가 느껴짐. 베드로 : 행동파 / 교회의 반석 / 먼저나섬,실수도 많음,뜨거운성격 바오로 : 논리파 / 이방인의 선교사 / 토론잘함,편지를 길게 씀,신학자 느낌 요한 : 묵상파 / 사랑의 사도 / 깊이 생각함,상징을 많이 사용함,사랑과 친교를 강조함 묵상 : 박해받는 고난 속에서 신앙을 지키는 이야기가 이이지고 있었는데 이번엔 어느때보다도 따듯한 독서 구절이였고 위로가 되는 복음이였다. 요한에 대해 알아보니 꽤 장수하셨고 많은 시대를 지켜보고 묵상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연륜에서 나오는 사랑이 느껴지는 구절이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와서 계속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알고 있는 단순한 사랑보다 더 큰 무언가 있는걸까? 그리고 하느님 안에 머무른다는 말이 참 좋다. 항상 바쁘고 지나치는 일상에서 가만히 머물러보아야겠다고 일깨우게 해준다. 오늘 복음에 대한 신부님 말씀도 인상적이였는데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무엇이든 잘하려 노력할 필요도, 애써 철든 척 할 필요도 없다고 하시며 우리에게 철부지 어린이와 같은 그 마음이 필요합니다. 슬프면 슬프다 힘들면 힘들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순수함과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느님께 맡겨드릴 수 잇는 천진함을 되찾기를 간절히 바래본다는 말씀이셨다. 나도 애써 철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되었고, 얼마전에 서점에게 잠깐 보게 된 이해인 수녀님의 글이 떠올랐다. '다정한 사람이 이긴다'라는 수녀님의 에세이에서 '어른스러운 어른' 제목의 글이다. 정확한 표현이 생각이 안나지만, 어른스러운 어른은 마음이 열려 있는 아이같은 마음을 갖고있다고 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어른스러운 어른이 된다는것은 뭘 많이 알고 애써 잘 하는 것보다도 순수하고 열린 마음상태가 되는것인가보다. --- 6월 23일 화요일 열왕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19,9ㄴ-11.14-21.31-35ㄱ.36 그 무렵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은 9 히즈키야에게 사신들을 보내며 이렇게 말하였다. 10 “너희는 유다 임금 히즈키야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네가 믿는 너의 하느님이, ′예루살렘은 아시리아 임금의 손에 넘어가지 않는다.′ 하면서, 너를 속이는 일이 없게 하여라. 11 자, 아시리아 임금들이 다른 모든 나라를 전멸시키면서 어떻게 하였는지 너는 듣지 않았느냐? 그런데도 너만 구원받을 수 있을 것 같으냐?’” 14 히즈키야는 사신들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 읽었다. 그런 다음 히즈키야는 주님의 집으로 올라가서, 그것을 주님 앞에 펼쳐 놓았다. 15 그리고 히즈키야는 주님께 이렇게 기도하였다.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세상의 모든 왕국 위에 당신 홀로 하느님이십니다. 당신께서는 하늘과 땅을 만드셨습니다. 16 주님, 귀를 기울여 들어 주십시오. 주님, 눈을 뜨고 보아 주십시오. 살아 계신 하느님을 조롱하려고 산헤립이 보낸 이 말을 들어 보십시오. 17 주님, 사실 아시리아 임금들은 민족들과 그 영토를 황폐하게 하고, 18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져 버렸습니다. 그것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만든 작품으로서 나무와 돌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이 그것들을 없애 버릴 수 있었습니다. 19 그러나 이제 주 저희 하느님, 부디 저희를 저자의 손에서 구원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세상의 모든 왕국이, 주님, 당신 홀로 하느님이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20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히즈키야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 때문에 네가 나에게 바친 기도를 내가 들었다.’ 21 주님께서 그를 두고 하신 말씀은 이러합니다. ‘처녀 딸 시온이 너를 경멸한다, 너를 멸시한다. 딸 예루살렘이 네 뒤에서 머리를 흔든다. 31 남은 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나오고 생존자들이 시온산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만군의 주님의 열정이 이를 이루시리라.’ 32 그러므로 주님께서 아시리아 임금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이 도성에 들어오지 못하고, 이곳으로 활을 쏘지도 못하리라. 방패를 앞세워 접근하지도 못하고, 공격 축대를 쌓지도 못하리라. 33 자기가 왔던 그 길로 되돌아가고 이 도성에는 들어오지 못하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34 나는 이 도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니 이는 나 자신 때문이며 나의 종 다윗 때문이다.’” 35 그날 밤 주님의 천사가 나아가 아시리아 진영에서 십팔만 오천 명을 쳤다. 36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은 그곳을 떠나 되돌아가서 니네베에 머물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묵상 : 아유 길다. 긴 독서를 할때는 더 많은 시간을 써서 연습을 해야하고 긴장도 더 많이 된다. 그래서 연습을 아주 많이 했지. 그런데 요즘 느끼는건데 연습을 너무 많이 하면 오히려 좋은 결과가 따라오지 않더라구. 연습을 하다보면 어느순간 잘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넘어간다. 나의 이런 마음을 느끼지 못한채로. 잘해야겠다는 마음까지는 좋은데 이게 하다보면 욕심이 생기나보다. 그러니 오히려 더 긴장이 많이 되고 굳는다. 아이를 키울때도 마찬가지다. 아이에게 좋은 것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 어느 순간, 조급함과 욕심으로 넘어가기가 참 쉽다. 본질과 욕심사이라고 해야할까? 뭐든지 잘 하고 싶고 최선을 다하다보면 본질에서 벗어난다. 얼마전까지는 뭐든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게 최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나이 50에는 그 부작용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애쓴다는것의 그 적당한 선은 어디일까? 아! 오늘 구절은 역사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가장 좋았던 구절은 '히즈키야는 주님의 집으로 올라가서, 그것을 주님 앞에 펼쳐 놓았다' 위기에 몰린 히즈키야는 혼란스러운 가운데 주님을 찾았고 고민을 펼쳐 놓았다. 그리고 '네가 나에게 바친 기도를 내가 들었다'라고 말씀하신다. 나에게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나도 주님 앞에 어려움을 펼쳐놓을 수 있기를. 아멘. --- 6월 28일 토요일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6,3-4.8-11 형제 여러분, 3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가 모두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4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8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리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9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시어 다시는 돌아가시지 않으리라는 것을 압니다. 죽음은 더 이상 그분 위에 군림하지 못합니다. 10 그분께서 돌아가신 것은 죄와 관련하여 단 한 번 돌아가신 것이고, 그분께서 사시는 것은 하느님을 위하여 사시는 것입니다. 11 이와 같이 여러분 자신도 죄에서는 죽었지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하여 살고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