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5일 일요일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말씀입니다. 3,1-4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게 영광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
배경:
콜로새 : 튀르키에 지역에 잇는 콜로새라는 작은 도시
한때는 번성했지만 다시에는 점점 쇠티 중인 곳
다양한 배경이 섞인 공동체, 신앙은 있지만 세상의기준들이 뒤섞임
저 위에 있는 것 : 하느님의 방식, 기준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 자기중심적인 삶,죄의방향
묵상:
작년부터 재의수요일 미사나 주님만찬미사를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가야한다는 개념이 아예 없었지만 궁금해져서 가게되었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였다. 끝날쯤에 성체를 모시고 소성전으로 가더라구. 그리고 제대는 하얀 천으로 덮어진다. 물품들을 싹 치우고 하얀 천으로 덮어져있는 제대가 다소 충격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올해 만찬미사에서는 그 순간이 허전하고 휑하게 느껴졌다.
사순시기에 뭔가 한게 없는것 같아서 마지막 파스카 성삼일이라도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할 수 있는것들을 참여해보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내일이면 부활이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 구절이 좀 다르게 와닿았다. 더 큰 세상의 시점으로 본다면, 지금 이 지구 세상은 사람들이 정해놓은 것일뿐이지. 부질없는게 많을 수 있겠네? 정답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닐 수도?
이런저런 생각으로 이어진다.
'위에 있는 것' 즉, 성경말씀과 신앙이 나의 삶에 대한 태도, 기준이 되어주고 있다.
믿고 기도할 곳이 있다는 것이 든든하고, 삶의 지표를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정신없이 그냥 나이만 먹고 살아가는 것보다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것인가 점점 생각해보게 되는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기때문이다.
내일 독서를 실수없이 잘 해내기를 바라며, 기쁜 부활 맞이 할 수 있게 함께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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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7일 화요일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2,36-41
오순절에, 베드로가 유다인들에게 말하였다.
36 “이스라엘 온 집안은 분명히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셨습니다.”
37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꿰찔리듯 아파하며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형제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38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39 이 약속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손들과 또 멀리 있는 모든 이들,
곧 주 우리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이에게 해당됩니다.”
40 베드로는 이 밖에도 많은 증거를 들어 간곡히 이야기하며,
“여러분은 이 타락한 세대로부터 자신을 구원하십시오.” 하고 타일렀다.
41 베드로의 말을 받아들인 이들은 세례를 받았다.
그리하여 그날에 신자가 삼천 명가량 늘었다.
배경 :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후, 제자들이 두려움 속에 있다가 성령을 받는 사건이 일어난 후에 베드로가 처음으로 공개 설교를 함.
묵상 : '꿰찔리듯 아파하며' 내가 그 시대 사람들이었고 그 군중안에 있었다면
나는 어떤 행동을 했을것이고 어떤 마음이였을까 상상해본다.
오늘의 복음 말씀 중 울던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보고도 '그러나 예수님이신 줄은 몰랐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울던 마리아의 마음은 어땠을까? 슬픔과 상실, 절망도 있었을까? 엉엉 소리내어 울고있었을까? 마치 어두운 감정에 휩싸였을 때 방향을 잃은 내 모습같기도 하다. 예수님이 마리아를 불러주었고 그제서야 알게되었을 때 얼마나 깜짝 놀라고 기쁘고 감동이 있었을까? 불러주심을 깨닫지 못하고 거부를 하던 나를 발견하게 된다.
작년부터 독서 봉사를 하게 되는 순간부터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다. 그로 인해 나의 시선과 삶의 방향이 조금 바뀌고 있다는걸 깨닫고 있다.
사순시기동안 어찌어찌하여 체나콜로 기도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번 모여서 묵주기도만 한다고해서 부담이 없었다. 체나콜로가 뭔지는 모르겠고,단순히 함께하는 기도의 힘에 보태고 싶었고, 한시간이면 되어서 좋았다.
요즘 묵주기도할때 반짝반짝 예쁜 묵주를 애용하고 있다. 2월에 선물받게된 크리스탈을 은색 디테일들이 감싸고 있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묵주다. 사실 이 묵주는 교회다니는 한 가족이 포르투칼 여행에서 선주에게 주려고 산 묵주였다. 하지만 선주에게는 무용지물인 물건이라 내 몫이 되었다. 아싸!
신부님으로부터 축성을 받은 이 묵주를 기도모임에서 애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서야 체나콜로가 뭔지 궁금해졌다. 알아보니 1973년 곱비라는 신부님이 포르투칼 파티마 성지에서의 기도가 시작이였다. 오! 마침 포르투칼에서 온 묵주가 달리 보였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기도 모임에 와서 기도하라고 나를 부르셨나 하는 생각을 해보며 의미부여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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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일 월요일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6,8-15
그 무렵 8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스테파노는 백성 가운데에서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켰다. 9 그때에 이른바 해방민들과 키레네인들과 알렉산드리아인들과 킬리키아와 아시아 출신들의 회당에 속한 사람 몇이 나서서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였다. 10 그러나 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11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우리는 그가 모세와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12 또 백성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을 부추기고 나서, 느닷없이 그를 붙잡아 최고 의회로 끌고 갔다. 13 거기에서 거짓 증인들을 내세워 이런 말을 하게 하였다. “이 사람은 끊임없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합니다. 14 사실 저희는 그 나자렛 사람 예수가 이곳을 허물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물려준 관습들을 뜯어고칠 것이라고, 이자가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15 그러자 최고 의회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스테파노를 유심히 바라보았는데,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처럼 보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배경 : 예수님 부활 이후,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고 공동체가 빠르게 커지고 있던 과정
묵상 :
예나 지금이나 논쟁하다 안되니까 비겁하게 공격하는 것은 똑같구나.
옛날 : 직접 보고 듣고, 사람들을 통해 전해 듣는 정보로만 판단하는 것
지금 : 곳곳의 카메라 시선이 있어 거짓말을 할 수 없기도 하지만,
수많은 정보 안에서 가짜와 진짜 정보를 가려내어 판단하는 것
이 두가지 중 어떤것이 더 정확하게 분별할 수 있을까?
나도 군중과 함께 묻어있다보면 같은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어쩌면 내가 사는 이 세상속의 가치에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물들어있는 걸지도?
하느님은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과는 관점이 다르겠구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지도?
뭐 이런저런 발상의 전환을 해본다.
스테파노의 천사의 얼굴처럼, 나도 어떤 공격이나 고통에도 흔들리지 않고
평온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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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1일 화요일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7,51─8,1ㄱ
그 무렵 스테파노가 백성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말하였다.
51 “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줄곧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조상들과 똑같습니다.
52 예언자들 가운데 여러분의 조상들이 박해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들은 의로우신 분께서 오시리라고 예고한 이들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러분은 그 의로우신 분을 배신하고 죽였습니다.
53 여러분은 천사들의 지시에 따라 율법을 받고도 그것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54 그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화가 치밀어 스테파노에게 이를 갈았다.
55 그러나 스테파노는 성령이 충만하였다.
그가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니,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이 보였다.
56 그래서 그는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57 그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았다.
그리고 일제히 스테파노에게 달려들어,
58 그를 성 밖으로 몰아내고서는 그에게 돌을 던졌다.
그 증인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젊은이의 발 앞에 두었다.
59 사람들이 돌을 던질 때에 스테파노는,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60 그리고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하고 외쳤다.
스테파노는 이 말을 하고 잠들었다.
8,1 사울은 스테파노를 죽이는 일에 찬동하고 있었다.
배경 : 교회 역사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전환이 일어나는 순간.
스테파노의 죽음 이후 박해가 시작되고 복음이 더 넓게 퍼지게 됨.
여기서 '사울'은 후에 '사도바오로'
율법에 충실한 사람이였고 그리스도인들을 위험하게 보고 박해까지 함.
사울은 그 당시 하느님을 위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확신에 차서 잘못된 방향으로 가던 사람이였으나
한 사건으로 완전히 멈추고 방향을 바꾸는 순간을 경험하고
복음을 가장 멀리까지 전하는 사람이 됌.
-> 가장 강하게 반대하던 사람이 가장 강하게 전하는 사람이 된 이야기
묵상 :
'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여'
받아들이지 않고 마음과 귀를 닫았던 때를 생각해본다.
조금씩 마음을 열어보았더니 성경말씀이 와닿게 됨을 깨닫는다.
'사울은 스테파토를 죽이는 일에 찬동하고 있었다'
사울을 통해 사람은 한 순간으로 정의되지 않는다는 것,
방향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맥락과는 조금 반대로 한 순간안에 갇힐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
최근, 너무 좋은 어른인데 생각지 않은 왜곡된 역사 의식을 갖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 분은 68년도에 해외로 이민을 가셨기때문에
한국역사가 딱 그 시기까지였던 것이다.
지금처럼 소식이 빨리 정확히 알 수 없는 때였으니 한참 후에 대충 전해들었을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처해진 테두리안에서 경험하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확신에 차 단정짓는 나의 생각이, 어쩌면 틀렸을 수 있다는 것을 요즘 계속 깨닫게 되었다.
이념이 다르다고,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속상해하거나 답답해하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것을 깨닫게 된다.
혹시 그 다른 생각보다 나의 생각이 더 성경말씀의 기준에 맞다고 판단된다면
그 이치를 알고있음 자체가 은총이라고 생각되었다.
이 어지러운 세상속에서 분별력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점점 느낀다.
그래서 삶의 기준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고, 신앙이 나를 지켜준다고 느낀다.
이번 사순시기,부활 이후 아무 일도 일어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부활절 다음 날부터 나는 컨디션 난조에 들어갔다.
육체적 고통이 지나고 문득 내가 많은 은총을 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은총이란 것이 무얼까? 가족들이 잘 되는거? 내가 하는 일이 잘 되는거?
하지만 하느님의 관점은 다른 것 같다.
내가 어떠한 시선과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그걸 인지하고 있는지
나를 알고 하느님을 알고 있는지 이런 고찰들을 통해
내 삶의 방향이 보이니 막연하지 않고 불안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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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3일 목요일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장애가 있겠습니까?>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8,26-40
그 무렵 26 주님의 천사가 필리포스에게 말하였다.
“일어나 예루살렘에서 가자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남쪽으로 가거라.
그것은 외딴길이다.”
27 필리포스는 일어나 길을 가다가 에티오피아 사람 하나를 만났다.
그는 에티오피아 여왕 칸다케의 내시로서,
그 여왕의 모든 재정을 관리하는 고관이었다.
그는 하느님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면서,
자기 수레에 앉아 이사야 예언서를 읽고 있었다.
29 그때에 성령께서 필리포스에게,
“가서 저 수레에 바싹 다가서라.” 하고 이르셨다.
30 필리포스가 달려가 그 사람이 이사야 예언서를 읽는 것을 듣고서,
“지금 읽으시는 것을 알아듣습니까?” 하고 물었다.
31 그러자 그는 “누가 나를 이끌어 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서,
필리포스에게 올라와 자기 곁에 앉으라고 청하였다.
32 그가 읽던 성경 구절은 이러하였다. “그는 양처럼 도살장으로 끌려갔다.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린양처럼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33 그는 굴욕 속에 권리를 박탈당하였다.
그의 생명이 이 세상에서 제거되어 버렸으니 누가 그의 후손을 이야기하랴?”
34 내시가 필리포스에게 물었다. “청컨대 대답해 주십시오.
이것은 예언자가 누구를 두고 하는 말입니까?
자기 자신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입니까?”
35 필리포스는 입을 열어 이 성경 말씀에서 시작하여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그에게 전하였다.
36 이렇게 그들이 길을 가다가 물이 있는 곳에 이르자 내시가 말하였다.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장애가 있겠습니까?”
(37)·38 그러고 나서 수레를 세우라고 명령하였다.
필리포스와 내시, 두 사람은 물로 내려갔다.
그리고 필리포스가 내시에게 세례를 주었다.
39 그들이 물에서 올라오자 주님의 성령께서 필리포스를 잡아채듯 데려가셨다.
그래서 내시는 그를 더 이상 보지 못하였지만 기뻐하며 제 갈 길을 갔다.
40 필리포스는 아스돗에 나타나,
카이사리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고을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묵상 :
'자기 수레에 앉아 이사야 예언서를 읽고 있었다.'
'누가 나를 이끌어 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기뻐하며 제 갈 길을 갔다.'
'에티오피아 사람 하나' 이 사람이 마치 지금의 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 말씀을 읽고 있지만 아직은 무슨 말인지 잘은 모르는
하지만 알게되자 기뻐하며 제 갈길을 가는 모습이 지금 내 마음이다.
항상 나는 경계쯤 어디선가 세상의 논리로 재보고 거부하고 버티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고
한발짝 딛고 마음을 열고 나니 성경의 구절구절들이 흥미롭고 의미있게 다가왔다.
환경속에 나를 넣어놓으니 강제로 묵상을 하고 미사를 보게되었고
성당의 공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요즘 나는 미사중에 빛이 가득한 제대를 보며 내 손끝과 코끝으로 이 공기를 기억해둔다.
나중에 내가 하늘나라에 가게 될때 이 공기를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독서대에 오르기전 항상 긴장감을 덜기 위해 감사하고 기쁜 마음을 떠올린다.
나는 성경을 묵상하고 낭독연습을 하면서 눈과 귀가 조금 열렸고
그로 인해 나의 마음과 시선이 바뀌었다고 느낀다.
홀리홀리한 충만함과 동시에 가난함을 느낀다.
결핍,나약함 이런 비슷한 것인데 이번 사순시기에 갑자기 '나 가난하다'라고 느꼈다.
어쨌든 이 에피토피아 한 사람처럼 나도
기뻐하며 내 갈 길을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조금 더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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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9일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2,24―13,5ㄱ
그 무렵 24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 자라면서 널리 퍼져 나갔다.
25 바르나바와 사울은 예루살렘에서 사명을 수행한 다음,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을 데리고 돌아갔다.
13,1 안티오키아 교회에는 예언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르나바, 니게르라고 하는 시메온, 키레네 사람 루키오스,
헤로데 영주의 어린 시절 친구 마나엔, 그리고 사울이었다.
2 그들이 주님께 예배를 드리며 단식하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 이르셨다.
“내가 일을 맡기려고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렀으니,
나를 위하여 그 일을 하게 그 사람들을 따로 세워라.”
3 그래서 그들은 단식하며 기도한 뒤 그 두 사람에게 안수하고 나서 떠나보냈다.
4 성령께서 파견하신 바르나바와 사울은 셀레우키아로 내려간 다음,
거기에서 배를 타고 키프로스로 건너갔다.
5 그리고 살라미스에 이르러
유다인들의 여러 회당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배경 : 안티오키아는 당시 국제도시(무역,다양한민족,다양한문화)
박해 속에서도 말씀 성장
묵상 :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 자라면서 널리 퍼져 나갔다.'
강론 말씀 중 카타리나의 예수님과의 담화 체험이야기가 인상적이여서 기록해본다.
카타리나 성녀님은 예수님에게 제가 그렇게 괴로울 때 어디 계셨냐고 물었고
예수님은 "나는 네 곁에 있었다"
"그런 고통들이 네 마음 안에 무엇을 가져다 주었느냐 즐거움이었느냐 고통이었느냐
기쁨이었느냐 슬픔이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큰 고통과 갈등이었습니다"라고 대답하셨다.
내가 거기에서 현존하지 않았더라면 유혹중에 쾌락에서 즐거움을 얻었을것이다
네가 유혹당하는것을 허락했지만 너의 구원을 위해 아무 흔들림없도록 너를 보호하고 있었다."
이렇게 4월의 독서도 마무리되었다.
부활절이 지나면 뭔가 달라져있을 것 같은 기분도 든다.
하지만 여전히 자잘자잘한 고통이 따라다녔고 인내가 필요했다.
지난 주에는 어찌어찌하다보니 일주일 내내 성당을 가게되었다.
그 속에 있다보니 또 극복이 되고 기쁨게이지가 올라간다.
그리고 놀랍게도 가정의 평화가 찾아온다. ㅋㅋㅋㅋ
뭉이 내가 성당가는걸 응원하고 지켜봐주는 이유다.
아 그리고 기도모임에서 좋은 말씀을 듣곤 하는데
그분이 생각하는 '영원한 생명'이란것에 대한 의미를 말씀해주신것이 기억에 남는다.
점과 점들이 이어지는 사랑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씀하셨다.
안그래도 성경에서 가장 알 수없는 말이 '영원한 생명' 이였기때문에 귀가 쫑긋했다.
나도 요즘 영원한 생명에 대한 단상이 코딱지만큼 업그레이드하고 있었다.
하느님의 사고방식는 지금 세상속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훨씬 크고 넓겠구나라는 생각을 시작으로
기도하고 서로 사랑하는 방식의 삶이 이어지길 바라고
그것들이 이어져야 이 세상이 이어지겠네.
사랑이 없다면 이 세상은 어둡고 무질서하게 서로 죽이다가 없어질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영원히 빛이 살아있어 세상이 이어지는 이런걸 말하는 건가?
어쨌든 막연했던 의문이 하나의 방향이 열리는 기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