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11일 월요일
**유치원**
나와 성당과의 만남은 7살이였다.
동네 성당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입학식 전에 OT같은걸 하던 날이 생각난다.
작은 마당이 있었고 건물로 들어가면 나비같은 곤충들의 표본이 복도 양쪽에 진열되어 있었다.
그 길고 어두운 복도를 따라 교실에 들어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선생님과 엄마들 그리고 또래 아이들이였겠지만
그냥 사람이 많고 복잡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편하진 않았다.
내 차례가 되어 선생님이 질문을 했는데
나는 말문이 터지지 않아 대답을 잘 안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나는 유치원을 다니게 되었고 조용한 아이였다.
생각나는 몇가지가 있는데
유치원을 가는 길에 나보다 더 크다고 느껴지는 개한테 쫓겨서
공포에 질려 유치원까지 뛰어갔던 기억이 있다.
그땐 셔틀버스같은 것은 당연히 없었고 꽤 먼길을 꼬맹이들이 걸어다녔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유치원에서 놀이시간이였는데 선생님이 다 정리한 사람은 집에 가도 좋다고 하셨다.
아! 아마도 7살 아이가 선생님의 의도를 모른채 단순하게 생각했겠지.
그래서 아이들은 놀고있고, 선생님 말씀대로 나는 정리하고 집에 갔다. 혼자.
아무도 날 잡지도 찾지도 않았다.
아! 나는 유치원때 정윤이라는 단짝 친구를 만난다.
예쁘고 야무진 친구다.
나의 그런 성격에 알아서 친구를 사귀었을 것 같진 않고
엄마들끼리 친해진게 아닐지 짐작해본다.
유치원,초,중,고를 함께 했고
각자 대학에 간 후부터는 연락을 안하게 되었다.
하지만 뒤늦게 우연히 연락이 되어 지금도 종종 연락하며 지낸다.
**초등**
뭔가 말없이 그렇게 세상을 조망하던 아이였던 나는
초등 4,5학년쯤에 성당에 다시 가게되었다.
동네 지선이라는 동생 따라 성당을 갔고
미사후에 학년별로 교실에 들어갔다.
선생님은 앞에서 뭐라뭐라 가르치셨고
나는 아이들 속에 조용히 있던 기억이 있다.
그런 루틴을 주일마다 반복하게 되었고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무대에서 작은 역할 무언가를 하기도 했다.
온통 반짝반짝하고 음악이 가득했던 성탄절 분위기가 떠오른다.
그때 내 눈도 반짝반짝해지는 기분이였다.
그러던 어느 따듯한 계절, 성당에 갔는데
같은 학년 아이들이 하얀 드레스를 입고 성전입구 앞에 줄을 서 있었다.
모두 천사처럼 예뻐보였고, 영문을 몰라 궁금했고 그리고 부러웠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첫영성체식이였던 것이다.
그 전에 시험같은 것을 보았고, 나는 문제지를 보고 당황스러웠다.
그 당시에는 첫영성체식을 위해 교리를 배우고 시험을 보았었던것으로 추측해본다.
난 아무것도 모른채 1-2년을 그냥 그 안에 있기만 했던 것이다.
그렇게 6학년이 되고 중학생이 되면서 성당은 안가게 되었다.
아! 성당가는 길에 봉헌금 지폐 한장을 손에 딸랑딸랑 들고 가고 있었는데
뒤에서 뛰어오던 사람이 그 지폐를 잡아채서 멀리 사라졌다.
날치기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그냥 그 도둑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대학**
그런 몇가지 성당에 대한 기억들이 쌓여서
성당이란 곳은 스며들듯 친숙했고 다시 가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대학생이었을 때 세례를 받게 되었다.
직접적인 계기는 생각나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성당으로 가게 되었다.
그렇게 세례를 받았는데 세례를 받던 순간이 도통 기억이 안난다.
대모님이 누구였는지, 어떤 분위기였는지, 누가 함께 축하해주었는지..
소중한 순간을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무언가가 참 필요하구나 싶다.
사진이든,물건이든,맛있는 음식이든 그 어떤것들이든.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으니 말이다.
그렇게 내 인생의 한 순간을 잃어버린 느낌이다.
**직장**
미사에 기계적으로 몸만 오가다가 어느 신부님 강론이 마음에 와닿았다.
그때쯤에 견진성사를 위해서 성령세미나 세번만 들으면 된다고해서
꽤 쉽게 견진성사를 받게 되었다.
대모님은 아파트 같은 동의 프란체스카 대모님이시다.
신앙이 꽤 깊은 분였고, 쓰신 책을 여전히 갖고 있다.
대녀들이 워낙 많아서 나를 포함한 청년 대녀들만 모아서 밥을 사주신 기억이 있다.
그리고 정연이가 빨간색 성경책을 선물해주었고
지금은 많이 낡고 삭았지만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견진성사를 받고 나는 성경이 궁금해졌다.
뭘 알고 성당을 다녀야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였다.
그래서 청년성서모임에 들어가게 되었다.
창세기반에 들어갔고 조장이 내 동생 친구였고 약간 뺀질 캐릭터였다.
그렇게 나는 성서공부를 시작했고 청년성서연수까지 가게되었다.
성서연수를 가기 전 나에게 안 좋은 상황들이 겹겹이 생겼다.
그 어두운 마음을 안고 1박 2일이였나?
서강대에서 하는 카톨릭 청년 성서 연수를 들어가게되었다.
연수를 들어가면서 종이에 지향을 적었던 기억이 있다.
나는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기를 기도했다.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후의 나는 좀 달랐다.
세상이 아름다웠고 기쁨과 인류애가 충만했다.
사람들을 보는 내 눈은 하트하트였다.
기쁨이 가득 찰리가 없었던 나의 상황을 아는 한 친구가
그런 나를 보고 독하다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 암흑기를 계기로 점점 더 좋은 환경에서 일을 하게되었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육아**
그 이후로 꾸준히 성당을 다녔다.
하지만 곧 그만큼의 뜨끈한 인류애는 식었고 하루하루 살기가 바빠졌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말없던 유치원 아이는 엄마가 되었고
이제 그 엄마의 아이가 유치원을 다니는 나이가 되었다.
같은 성당을 다니는 유치원 친구를 만나 함께 어린이주일미사를 가게되었다.
그렇게 주일미사를 데리고 다니다보니 간식봉사를 하게 되었고
간식봉사를 통해 우리동네 반모임에 나가게 되었고 반장봉사를 했고
지금은 전례봉사를 하게되고 기도모임도 더해졌다.
**2026년**
최근에 나의 신앙생활을 돌아보게 된 계기가 있었다.
어떻게 성당을 다니게 되었냐, 언제 세례를 받게 되었냐,
언제 봉사를 하게되었냐고 물어봐주는 사람들이 몇명 있었다.
그리고 지난 주에, 나의 암흑기에 강론으로 내 마음을 열어주신
그 신부님의 성함과 세례명이 내 눈에 띄었다.
근처에서 그 신부님의 강론과 미사와 안수가 있다는 공지를 보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나도 손! 참석하게 되었다.
강론만 듣고 오려했지만 사람들이 간 김에 안수는 받고와야한다고 해서
같이 안수까지 야무지게 받고 왔다.
역시나 인류애 충만하여 돌아왔다.
어떻게 성당을 다니고 봉사를 하게되었냐는 질문에 답을 얻은것 같았다.
신부님 덕분에 나의 예전으로 돌아가 보았고
나의 신앙 성장기의 과정을 회상해 볼 수있었다.
늘 나를 이끌어 주셨고
힘든 순간들을 잘 지나갈 수 있도록 굿타이밍에 미리 준비해주셨고
조금씩 눈과 귀가 뜨일 수 있도록
나의 때에 맞추어 늘 함께 하셨다는 것이다.
임마누엘.
그런데 함께라는 걸 알면서도
또 함께 해달라고 기도하게 된다.
아멘.